도서
단행본
(이정)박헌영 전집 / 이정박헌영편집위원회 엮음 . 2.
서울 : 역사비평사, 2004.
791p ; 27cm.
8976968123
8976968204(전9권)
한자서명: 而丁 朴憲永 全集
색인수록
한국어
목차
추천사 = 5
발간사 = 12
일러두기 = 24
약어표 = 31
1. 직접 저작
2-1 현정세와 우리의 임무, 1945.8.20. = 47
2-2 자필 이력서, 1945. = 56
2-3 조선공산당 총비서 박헌영 동지와 미 제24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회담, 1945.10.27. = 59
2-4 박헌영 동지와 이승만 박사의 회담, 1945.10.31. = 66
2-5 朝鮮共産黨의 主張-朝鮮民族統一戰線結成에 對해, 1945.10.30. = 68
2-6 朝鮮共産黨中央委員會 指示, 1945.10. = 73
2-7 조선공산당,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대하여 동당의 태도를 밝히는 성명을 발표하다, 1945.11.3. = 74
2-8 聯合國에 보낼 決意文 共産黨에서 反對表明, 1945.11.3. = 77
2-9 聯合軍은 恩人, 親日派는 仇敵-獨立促成 決議에 對한 共産黨의 批判, 1945.11.3. = 80
2-10 團結力으로 싸우자, 1945.11.5. = 81
2-11 '産勞'의 發展을 祝賀, 1945.11.7. = 83
2-12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박헌영 동지와 미군정청장 아놀드 소장의 회담, 1945.11.13. = 84
2-13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박헌영 동지와 미 제24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회담, 1945.11.15. = 87
2-14 박헌영 동지와 이승만 박사의 두번째 회담, 1945.11.16. = 90
2-15 뉴욕타임스 존스톤 기자의 질문에 대한 박헌영 동지의 답변, 1945.11.20. = 92
2-16 李英同志를 中心한 長安系 콤그룹 解體 入黨聲明에 對하야, 1945.11.28. = 94
2-17 長安派同志 歡迎, 共産黨 統一 마추고-朴憲永氏 談, 1945.11.28. = 96
2-18 진보적 민주주의 기빨 밑에서-공산당 대표 정견방송, 1945.11.30. = 97
2-19 進步的 民主主義旗下에서-共産黨首 朴憲永氏 昨日 放送, 1945.12.1. = 100
2-20 全民衆 爲한 幸福-朝共政見 放送內容 要旨, 1945.12.1. = 102
2-21 進步的 民主主義 下에 民族統一戰線 結成-朝鮮共産黨에서 政見發表, 1945.12.3. = 103
2-22 共同 敵=日帝를 打倒하라-日本共産黨 全國大會에 멧세이지(上)·(下), 1945.12.2. = 105
2-23 박헌영 동지와 아놀드의 회담, 1945.12.12. = 110
2-24 下部統一은 着着 前進 頑冥한 右翼政黨이 妨害, 1945.12.12. = 114
2-25 統一戰線 結成에 對해 共産黨서 態度 表明, 1945.12.12. = 116
2-26 民族統一戰線과 臨時政府에 對하여-新聞會見에서 意見發表, 1945.12.12. = 117
2-27 獨立同盟, 我黨에 協力, 1945.12.19. = 119
2-28 統一害妨者는 그대, 老팟시스트 李博士를 暴露함, 1945.12.23. = 121
2-29 共産黨의 建設 役割 無視코 民族獨立에 破壞行爲-팟시스트 李博士에 反省 要求, 1945.12.23. = 126
2-30 民族統一의 分裂促進, 朝鮮共産黨 國民大會 召集反對, 1945.12.26. = 131
2-31 파시즘을 根滅하자-朝鮮共産黨 當面課題에 對하야 放送, 1945.12.28. = 133
2-32 國內에 當面한 課業은 「파시즘」 根滅鬪爭이다, 1945.12.28. = 136
2-33 民族統一政府를!, 1945.12. = 138
2-34 朝鮮에 完全獨立, 世界엔 平和의 해로서, 1946.1.1. = 140
2-35 民族統一을 基本 完全自主獨立에로, 1945.12.26. = 144
2-36 新年의 課題는 統一-朴憲永氏 談, 1945.12.26. = 148
2-37 三相會議의 朝鮮에 對한 決定을 支持하자, 1946.1.16. = 150
2-38 三相會議의 朝鮮에 對한 決定을 支持하자, 1946.1.16. = 156
2-39 急速히 戰線統一, 1946.1.16. = 158
2-40 문자보급 실행, 1946.1.17. = 160
2-41 오늘 情勢와 우리 民族의 살 길, 1946.1.24. = 162
2-42 諮問委員會는 反對, 軍政延長을 意味하는 것임으로, 1946.1.28. = 168
2-43 諮問委員會의 設置는 美軍政의 延長을 招來, 朴氏, 굳大佐의 提案에 反對, 1946.1.28. = 170
2-44 諮問委員會에 不參-共産黨 態度를 表明, 1946.1.28. = 172
2-45 李承晩氏의 放送을 駁함, 1946.1.29. = 173
2-46 祝 創刊, 1946.1. = 177
2-47 三相會議 決定과 朝鮮, 1946.2.1. = 178
2-48 佛蘭西에 잇서서의 民主主義政府 出現, 1946.2.5. = 182
2-49 戰後 資本主義經濟에 對하야, 1946.2.9. = 185
2-50 安南과 짜바의 獨立運動(上)·(下), 1946.2.10, 13. = 188
2-51 크리미야 宣言 一週年을 마지하야(上)·(下), 1946.2.12. = 192
2-52 民主主義的 實踐만이 完全獨立의 最捷徑, 1946.2.15. = 201
2-53 實踐딸는 民主主義를, 原則的 統一을 主張한다, 1946.2.15. = 203
2-54 民主主義民族戰線 結成大會-첫날 朴憲永氏의 演說要旨, 1946.2.15. = 204
2-56 '테로'와 '테로'의 責任者의 正體, 1946.2.16. = 205
2-57 조선공산당의 재건과 그 현상황, 1946.3. = 207
2-58 三一運動 第二十七周年 記念日을 마지하야, 1946.3.1. = 214
2-59 歷史家는 良心을 가저라!, 1946.3.9. = 215
2-60 朝鮮臨時政府樹立에 對하야(上)·(下), 1946.3.12. = 218
2-61 政府樹立과 나의 提言, 1946.3.23. = 220
2-62 人民 속에 誕生-朴憲永氏 談 發表, 1946.3.23. = 222
2-63 政府樹立原則 共黨 代表具體案 提出, 1946.3.24. = 223
2-64 李承晩氏의 '데마'를 暴露한다(上)·(下), 1946.3.26. = 224
2-65 共産黨의 主張 歪曲함은 遺憾-朝共서 談話 發表, 1946.3.26. = 229
2-66 "데마를 粉碎-朝共代表 朴憲永氏聲明, 1946.3.26. = 230
2-67 故 金在鳳 同志를 爲한 追悼辭(要旨), 1946.3.30. = 232
2-68 反動新聞 暴言을 駁함(上)·(下), 1946.4.2, 3. = 236
2-69 우리 政府樹立에 모든 힘을 集中하자, 1946.4.5. = 239
2-70 親日派 擁護者는 누구냐(一)·(二), 1946.4.9. = 245
2-71 人民의 利益을 代表할 民主政權을 세우자, 1946.4.11. = 249
2-72 朝鮮과 朝鮮共産黨, 二十一週年 記念日에 際하야(上)·(下)·(三)·(四), 1946.4.15. = 252
2-73 日帝의 集中攻擊 받고 歷史的 使命 實行-朝共 代表 朴憲永氏 談話, 1946.4.15. = 263
2-74 朝鮮人民에게 드림(上)·(中)·(下), 1946.4.17. = 265
2-75 黨 二十一週年 記念式에서-朴憲永 同志의 式辭, 1946.4.17. = 270
2-76 日帝와 싸우든 날을 回想, 1946.4.17. = 276
2-77 三相會議決議를 全的으로 支持, 1946.4.19. = 278
2-78 第二回民戰中央委員會에서 朴동무 報告 演說(一)·(二)·(三)·(四)·(五)·(完), 1946.4.20. = 279
2-79 第六號 聲明을 읽고-朴憲永 동무 談話, 1946.4.25. = 299
2-80 美蘇共委 聲明 六號는 民主的 解決方法, 1946.4.25. = 301
2-81 共委의 成功確信, 1946.4.25. = 303
2-82 正義의 붓을 들라-記者大會에서 朴동무 演說, 1946.4.25. = 304
2-83 박 비비안나에게 보낸 편지, 1946.4.29. = 306
2-84 民主朝鮮建設의 敎師되라, 1946.5.1. = 307
2-85 六十週年 메-데-에 際하야, 1946.5.1. = 308
2-86 메-데-는 民主主義의 勝利의 날이다(上)·(下), 1946.5.31. = 315
2-87 굿센 團結로써 모든 謀略을 破碎하자, 1946.5.3. = 321
2-88 蘇美共同委員會 第七號 聲明을 보고서, 1946.5.2. = 322
2-89 戰爭記念日을 祝賀하자(二), 1946.5.10. = 323
2-90 民主政府組織을 妨害하는 反動巨頭들을 排除하자, 1946.5.12. = 326
2-91 '獨立戰取大會'의 罪狀을 論함(一)·(二)·(三), 1946.5.15, 16, 17. = 329
2-92 蘇美共同委員會의 再開와 그 成功을 爲하야(上)·(二)·(完), 1946.5.28, 6.2, 3. = 336
2-93 까리-닌 同志를 弔함, 1946.6.5. = 342
2-94 第20週年千萬 同胞에게 訴함(一)·(二), 1946.6.9. = 344
2-95 自主獨立完成을 爲하야(一)·(二)·(三)·(四)·(五)·(六)·(七)·(八)·(九), 1946.6.14~21, 6.23. = 349
2-96 蘇美共同委員會의 續開는 우리의 團結로서(一)·(完), 1946.6.17, 18. = 365
2-97 土地改革은 民主獨立의 基礎, 1946.6.18. = 369
2-98 國際 파시즘의 崩壞는 六月 二十二日로부터다(一)·(二), 1946.6.22, 23. = 375
2-99 하 將軍에게 보내는 '멧세-지', 1946.7.4. = 379
2-100 左右合作에 關하여, 1946.7.14. = 381
2-101 民族統一의 三大原則(下), 1946.7.14. = 384
2-102 强制合作은 絶對反對, 1946.8.2. = 387
2-103 共産黨의 回答, 1946.8.4. = 391
2-104 三黨合同案進展 共産黨, 人民黨案受諾, 1946.8.4. = 392
2-105 合同機運 漸熟, 共産黨서 提案 受諾, 1946.8.4. = 393
2-106 大局的 見地에서 三黨合同 受諾 決定, 1946.8.6. = 393
2-107 三黨合同을 推進-民戰 議長團과 朴憲永氏 談話, 1946.8.6. = 397
2-108 南朝蘚의 危機克服策은 人民의 政權 把握, 1946.8.6. = 399
2-109 經濟 敎育 等 當面 諸問題-하 中將에 朴憲永氏 建議, 1946.8.7. = 403
2-110 民主課業을 完遂⑥, 1946.8.7. = 404
2-111 八·一五記念에 際하야 同胞들에게 告함(上)·(中)·(下), 1946.8.14. = 405
2-112 八·一五를 마저, 1946.8.15. = 410
2-113 民主改革 實施하야 建國基礎 完成하자, 1946.8.15. = 411
2-114 反動輩의 打倒없이 民主自主獨立 업다, 1946.8.15. = 414
2-115 政黨合作 强調, 1946.8.15. = 415
2-116 8·15데모의 意義, 1946.8.18. = 416
2-117 合黨工作 促進을 爲하야, 1946.8.24. = 419
2-118 八·二九 反動陣營의 集會를 解剖함, 1946.8.31. = 425
2-119 合黨과 그 實現方針, 1946.9.2. = 428
2-120 人民共和國은 우리의 創意, 1946.9.5. = 430
2-121 中央人民委員會 一周年 記念日, 1946.9.5. = 433
2-122 南朝鮮의 情勢, 1946.10.10. = 434
2-123 左右合作 七原則 批判(上)·(下), 1946.10.26. = 448
2-124 南朝鮮立法議院, 1946.11.7. = 453
2-125 十月人民抗爭, 1946.11.13. = 467
2-126 三一運動의 意義와 그 敎訓, 1947.2.24. = 548
2-127 東學農民亂과 그 敎訓, 1947.4.22. = 596
2-128 創刊에 際하야-自己使命에 充實할 터, 1947.6.18. = 620
2-129 人民들에게 告함, 1948.3. = 623
2-130 박 비비안나에게 보낸 편지, 1948.4.5. = 634
2-131 外帝排除의 重要契機-朴憲永 先生 回翰, 1948.4.12. = 636
2. 기자회견
2-132 民族反逆者를 除外한 統一政府를 結成-朝鮮共産黨 朴憲永氏談, 1945.10.10. = 643
2-133 民族統一政權을 支持-朝鮮共産黨 朴憲永氏 政見 吐露, 1945.10.10. = 647
2-134 統一政權에 協力, 進步的民主主義確立-共産黨首 朴憲永氏와 一問一答, 1945.10.10. = 650
2-135 民族統一前線結成에 關한 朝鮮共産黨의 見解를 披瀝하다, 1945.10.30. = 652
2-136 民族統一과 朝鮮共産黨의 見解, 1945.10.30. = 655
2-137 共産黨도 軍政에 協力-朴憲永 黨首 하지 中將에 表明, 1945.11.17. = 657
2-138 共産黨 軍政에 協力-朴憲永氏 兩將軍과 會談, 1945.11.17. = 658
2-139 軍政首腦와의 會談에서 軍政에 協力하고 또 批判 建議할 것을 表明하다, 1945.11.17. = 659
2-140 批判的으로 大衆運動-共黨 朴憲永氏 中央社 曾恩波氏 對談, 1945.11.17. = 660
2-141 朝共勢力 四百萬-朴氏 中央社特派員께 言明, 1945.11.17. = 662
2-142 主義와 綱領이 같다면 單一黨으로 統一하자, 1945.11.28. = 663
2-143 建國의 理想을 發表, 1945.11.28. = 666
2-144 政黨亂立을 淸算하고 統一政權 樹立하자, 1945.11.28. = 667
2-145 '託治'는 進步的 國際路線 臨政의 팟쇼性 暴露-朴憲永氏 外國記者團과 會見, 1946.1.5. = 668
2-146 3상회담 결정 지지가 통일의 일치조건, 반팟쇼 투쟁은 최중요한 과업-박헌영 동무 외국기자단에 담화, 1946.1.5. = 672
2-147 內外記者團會見에서 當面問題에 대하여 말하다-조선공산당책임비서 박헌영, 1946.1.5. = 673
2-148 一國信託 要求했다고 우리 黨에 對한 데-마, 1946.1.16. = 675
2-149 蘇聯編入은 虛說-朴憲永氏, 誤報를 一蹴, 1946.1.16. = 676
2-150 朴憲永氏는 事實을 否認, 1946.1.16. = 678
2-151 朴氏 會見狀況 眞相을 發表, 1946.1.16. = 679
2-152 具體的 原則을 明示-共産黨 朴憲永, 1946.3.22. = 680
2-153 見解의 一致에 自信을 어덧다-스 將軍 演說에 대한 朴憲永 동무의 談話, 1946.3.22. = 681
2-154 朝鮮獨立 聯合國援助로-朝鮮共産黨 朴憲永氏談, 1946.3.24. = 682
2-155 歷史進行에 逆行하는 反動分子는 沒落한다, 1946.3.27. = 683
2-156 新指導者는 누구를 支持?-朴憲永氏 UP記者問答, 1946.3.27. = 686
2-157 外國共産黨과 關係업다-朝共, 美記者 書面質問에 回答, 1946.3.27. = 687
2-158 "外國黨과 關係없다" 民主議院에는 不參-共産黨, 外人記者에 答辯, 1946.3.27. = 689
2-159 金日成氏를 大統領 推戴-UP 記者設問에 共黨 朴氏 奇答, 1946.3.27. = 690
2-160 民主議院의 動搖는 첫날부터 알 수 있었다, 1946.4.3. = 692
2-161 土地改革 地主에 寬大-朴憲永氏 記者團會見談, 1946.4.3. = 696
2-162 말보다도 實踐이 第一-朝共 朴憲永氏 記者團과 問答, 1946.4.3. = 698
2-163 眞正한 民主主義를 實踐-朴憲永氏 記者團에 答辯, 1946.4.3. = 699
2-164 記者團 會見에서 食糧對策等에 關하여 言明하다, 1946.4.3. = 701
2-165 臨時政府樹立만이 一切 問題를 自主的으로 解決, 1946.4.10. = 702
2-166 南朝鮮 政府樹立으로 三相決議 破棄할 理 없다-朴憲永 會見, 1946.4.10. = 705
2-167 左翼合同工作과 朝共側의 觀測, 1946.4.10. = 706
2-168 美蘇委員會 成功을 確信-朴憲永氏 會見談, 1946.4.10. = 707
2-169 朴憲永氏 時局 縱橫談-記者團의 質問에 對하야, 1946.4.10. = 709
2-170 全的으로 贊成-共産黨 朴憲永氏 談, 1946.4.19. = 711
2-171 支持뿐 아니라 實踐으로-共産黨 朴憲永氏 談, 1946.4.19. = 712
2-172 右翼指導者는 如前, 反動 過誤 깨달은 大衆과는 協調-朴憲永氏 記者團會見談, 1946.4.24. = 712
2-173 하 中將 聲明을 歡迎-共産黨 朴憲永氏 記者會見, 1946.4.24. = 714
2-174 反動頭目의 孤立化만이 共委續開, 獨立을 促進, 1946.6.12. = 715
2-175 共委續開運動 展開 人民의 힘으로만 可能, 1946.6.12. = 717
2-176 共委는 續開된다-朝共 朴憲永氏의 見解, 1946.6.12. = 718
2-177 共委는 續開된다-朴憲永氏 記者團 會見談, 1946.6.12. = 719
2-178 共委再開運動-北朝鮮서 大規模로 進行, 1946.6.20. = 719
2-179 共委再開 爲한 努力 當面한 우리 義務, 1946.6.20. = 721
2-180 共委再開에 總力-朴憲永氏 現情勢의 見解 表明, 1946.6.20. = 722
2-181 三相決定 實踐의 措置-朴憲永氏 談話, 1946.6.27. = 723
2-182 原則잇는 合作 必要-朴憲永氏, 記者團과 一問一答, 1946.7.3. = 724
2-183 斷乎한 態度 取할 터-僞幣事件에 朴憲永氏 談 , 1946.7.24. = 725
2-184 테로와 僞幣에 對한 朴憲永氏 時局縱橫談, 1946.7.24. = 727
2-185 急速 公判廻附는 不當-共産黨代表 記者團에 言及, 1946.7.2曺氏 除名 事實, 1946.7.24. = 730
2-187 北朝鮮 兩黨合同과 所謂 僞幣公判에 關해-朴憲永氏 記者團과 一問一答, 1946.8.1. = 731
2-188 以北合黨은 正路, 公判날 群衆은 平和群衆, 1946.8.1. = 733
2-189 北朝鮮 合黨決定, 勤勞大衆 利益擁護 爲해 慶賀, 1946.8.1. = 734
2-190 實彈發砲는 遺憾 合黨問題 勞動法案에도 言及, 1946.8.1. = 736
2-191 合同은 當然-朴憲永氏 談, 1946.8.1. = 737
2-192 美軍撤廢의 英斷이 必要, 合黨反對는 斷乎排擊, 1946.8.7. = 737
2-193 反對派에게 停權處分, 1946.8.7. = 739
2-194 反黨分子는 斷乎 措置, 1946.8.7. = 740
2-195 合黨 反對派 除名問題로 共産黨 朴氏 意見發表, 1946.8.7. = 741
2-196 合黨 妨害者 排擊, 1946.8.7. = 743
2-197 果然 朝鮮 人民大衆은 美軍政의 存續을 希望하고 있는가?, 1946.8.7. = 744
2-198 박헌영의 정례 기자회견 요지, 1946.8.7. = 745
2-199 政權은 人民에게! 殺傷破壞를 물리치자, 1946.8.21. = 746
2-200 流血彈壓은 理解 困難, 1946.8.22. = 748
2-201 殺傷破壞를 粉碎하라, 政權은 人委에게로!, 1946.8.21. = 749
2-202 借款 設定 反對鬪爭에 左右의 行動統一提起, 1946.8.27. = 750
2-203 美軍宿舍 建築에 反對, 1946.8.27. = 752
2-204 借款에 反對-朝共代表 談, 1946.8.27. = 754
2-205 僞幣公判 進行에 對해-朴憲永氏 談,1946.8.27. = 755
2-206 外國의 資本投資地로 朝鮮獨立은 유躪, 1946.8.30. = 756
2-207 獨立은 오지 않고 李完用만 再現, 1946.8.30. = 758
2-208 民族課業을 完遂하자, 1946.8.30. = 759
2-209 獨占資本의 走狗 掃蕩하야 朝鮮의 植民地化를 막자, 1946.8.31. = 760
2-210 植民地 敎育에 對한 學園의 鬪爭은 當然, 1946.9.4. = 762
2-211 北朝鮮은 急進한다, 反黨分子 過誤 淸算을 期待, 1946.9.4. = 764
2-212 朝鮮共産黨 代表 朴憲永과 同反幹部派 姜進 合黨問題에 對한 記者質問에 各各 自派의 所見을 밝히다, 1946.9.4. = 765
색인 = 767
「이정박헌영전집」편찬위원회 = 789